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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SW개발병 합격 수기
2025-06-28

배경#

나는 현재 해군병 710기 SW개발병으로 복무 중이다. 복무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난 시점이지만, 기억을 되짚어 합격 수기를 작성하고자 한다. 군 복무의 특성상 모든 정보를 상세히 기록할 수는 없지만, SW 개발병 지원을 희망하는 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정리하여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이 글을 쓴다.

원래 나는 현역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기 위해 입대를 미루고 있었다. 특성화고 출신은 아니었지만, 주변 대학 선배들이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는 사례를 종종 접할 수 있었다. 운 좋게 TO가 있는 회사에 입사하여 수습 기간까지 마쳤으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당시 산업기능요원 편입 조건은 ‘대학교 2학년 수료’였는데, 졸업에 필요한 140학점의 절반인 70학점을 채우지 못한 67학점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자격 미달이었고, 회사는 TO를 소진해야 했기에 편입은 무산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바보같은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학점 조건을 충족했을때 편입은 또다시 불가능해졌다. 병무청에서 2022년도부터 현역 대학생의 산업기능요원 편입을 갑작스럽게 중단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인원만 해당되는 정책 변경이었기에, 논란 없이 빠르게 추진됐다고 생각한다. 뭐 인생이 그런거 아니겠나…

입대가 늦어진 상황에서 대학원 진학 후 전문연구요원에 도전하는 길도 고민했다. 하지만 연구는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카투사에 지원했지만 이 또한 선발되지 못했다. 결국 11월 입영을 알리는 징집 통지서를 받았고, 이미 대학교 졸업 요건까지 모두 갖춘 상태라 더는 입대를 미룰 명분도, 방법도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더 이상 군 복무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개발자로서의 역량을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4개월 안에 개발 관련 모집병으로 합격하기’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서류 지원#

모집병 지원을 앞두고 나의 이력을 정리하며 여러 직무를 살펴보았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SW개발병이었다. 이 직무는 육군, 해군, 공군에서 모두 모집하고 있었기에, 복무 기간을 고려하여 육군, 해군, 공군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 군의 선발 기준을 비교하며 나에게 유리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검토한 육군은 서류 전형의 합격선이 매우 높았다. 선발 기준은 학위, 자격증, 경력 등이었는데, 40점 만점 중 합격선이 37점대에 형성된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사실상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아니면 합격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 졸업 전이었고, 보유한 자격증은 산업기능요원 준비를 위해 취득한 산업기사가 전부였기에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없었다. 징집일까지 남은 시간을 고려하면 기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므로, 육군 지원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다음 우선순위인 해군으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해군의 선발 기준은 육군에 비해 나에게 훨씬 유리했다. 특히 실무 경력에 대한 배점이 매우 높았던 반면, 학위별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지원자들의 나이대를 고려했을 때, 1년 10개월의 실무 경력을 가진 내가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나는 해군 SW개발병 710기에 지원했다. 이는 징집병으로 입대하여 보병이나 통신병으로 복무하는 대신, 개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길에 모든 가능성을 건 결정이었다.

서류 지원 결과#

서류 전형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 나의 순위는 2등이었고, 1명을 뽑기 때문에, 면접에서 충분히 쇼부를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경쟁률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류 단계에서의 탈락 비중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당락은 면접에서 결정될 것이라 예상했다. 2년간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할 팀원을 선발하는 과정이므로, 서류보다 면접에 비중을 두는 것은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면접 준비를 위해 병무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평가 요소를 꼼꼼히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에 수행했던 프로젝트, 회사 실무 경험, 동아리 활동 등을 복기하며 군 환경에 맞는 이력서를 새로 작성했다. 기존 회사 이력서를 그대로 제출하기보다는, 군의 특성을 고려하여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전 기수 합격자들의 후기를 참고하여 예상 질문을 만들고 답변을 연습했다.

서류 합격 발표 후 면접일까지, 다른 활동은 거의 중단하고 이력서 정리와 면접 준비에만 몰두했다. 떨어지면 징집병으로 입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과 경각심을 갖고 절실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면접#

개발자 면접은 복장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 군 면접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단정함에 신경 썼다. 셔츠 위에 검정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면접이 있던 10월은 날씨가 제법 선선했다. 면접장은 군부대 내에 위치했는데,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워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여러 합격 후기에서 지원자들이 개인 이력서를 직접 챙겨갔다는 정보를 접했다. 이에 넉넉하게 네 부를 출력하여 깔끔하게 정리해 챙겨갔다.

보안상 면접의 내용을 상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반적인 기술 면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면접관들은 내가 준비해 간 이력서를 살펴보며 질문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수행했던 프로젝트와 사용 기술 스택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대학 시절의 포트폴리오와 동아리 운영 경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물었다. 기술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개발자로서의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해서도 질문하며 다각도로 나를 파악하려는 듯했다.

나는 평소 면접에서 나를 과장하거나 꾸미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면접에서도 진솔한 태도로 임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면접장을 나서는 순간, 모든 면접이 그렇듯 아쉬움이 밀려왔다. 더 잘 대답할 수 있었던 질문에 대한 후회와 합격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합격#

면접 후 합격 발표까지는 약 한 달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그대로 징집되어 보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과 ‘징집을 미루고 다시 한번 개발병에 도전해야 하나’하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개발병 발표일과 징집 연기 마감일이 맞물려 있었기에, 선택의 기로에서 오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결국 운동이나 공부 같은 생산적인 활동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게임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합격 결과 미리 확인하는 법’과 같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만큼 나의 모든 신경은 오직 합격 여부에만 쏠려 있었고, 그 간절함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마침내 발표 당일, 합격 통보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기나긴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TO는 1명이었지만 최종 2명이 선발되었다. 1등과 불과 1점 차이로 2등이었던 나까지 추가로 합격한 것이다. 면접관분들이 나의 가능성을 좋게 봐주신 것인지, 혹은 예비 인원을 고려한 선발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입대를 위한 주변 정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합격

마무리#

돌이켜보면 SW개발병은 지원 시기에 따라 경쟁률의 편차가 큰 편이다. 지원자 풀 자체가 넓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실력에 확신을 가진 이들이 지원하기에 실질적인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학생 지원자도 많지만, 나처럼 실무 경험을 쌓다 온 지원자도 종종 있어 경쟁의 난이도를 예측하기 어렵다.

모든 일이 그렇듯 운도 중요하지만, SW개발병은 개발 경력을 이어가고 싶은 미필 개발자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선택지임이 분명하다. 만약 관심이 있다면, 경험과 개발 역량, 그리고 군 복무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여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해군 SW개발병 합격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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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MINSEOK CHOI
게시일
2025-06-28
라이선스
CC BY-NC-SA 4.0